https://youtu.be/aYNj253t8sM?feature=shared
※아래 내용은 위 일본 타로 유튜버의 염소자리 2024년 7월 운세 제너럴리딩 영상을 한국어로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모든 것을 끝낸 후의 상쾌함이나 의존을 벗어난 후의 가벼워진 느낌이며, 지금까지 따라붙었던 생각들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편안해진다는 감각이에요. 그리고 그동안 자신을 얽매었던 것들, 무겁다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이제까지라면 그것들이 자신에게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 때문에 괴로워졌었는데, 어디서부터 벗어나야 할지 몰랐던 것들이 있었죠. 그런 것들에 대한 컨트롤이 이제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제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감각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여기까지다'라고, '이제 더 알려고 할 필요가 없어'라고, '이제 더 가질 필요가 없어'라고, '딱 좋은 위치에 멈춰두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더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거나, 더 알고 싶어서 스마트폰을 보며 계속 검색하고 멈출 수 없게 되는 그런 마음에 대해 컨트롤이 가능해졌어요. 인간관계에서도 누군가에게 너무 의지하게 되는 부분이나, 사실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좋다고 말해주면 자신 안에서 짐이 조금 내려가는 듯한, 그 결정을 맡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고, 거기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정말로 할 수 있게 되는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생각이라는 것은 때로는 걱정거리가 되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잘 활용하면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죠. 제대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사용 방법을 '아,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하는 감각이 지금 깊은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의존을 끊거나 적절한 지점에서 멈추는 것,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놓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놓는 것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능해짐으로써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보면, 승리를 거두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며, 앞이 보이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잃고 마치 묻혀버린 것 같았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곳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꽤 좋은 흐름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승리함으로써 드디어 무언가를 보고할 수 있게 되거나, 자신 안에서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느낌이 생기고, 가슴을 펴고 '이제 좋다'라고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다른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가치관을 자신 안에 받아들여 화학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섞임을 자신이 허용하지 않으면 그런 화학반응은 일어나지 않는 거죠. 표면적으로는 '알겠어'라고 말하면서도, 깊은 곳에서는 '그 사람 말은 별로야' 혹은 '결국 내 생각이 옳아'라는 의식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져요. 이전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 진지하게 듣지 못했던 것들, 자신에게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 이번에는 마음에 와닿게 될지도 몰라요. '이 사람 말에 일리가 있나 보다' 혹은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건 아닐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심지어 옳다고 해도 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런 섞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짐으로써, 그로 인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 보면, 그 화학반응은 자신에게 불을 붙여주는 것일 수 있어요. 이전에는 불이 붙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불이 붙기 시작하는 느낌이죠. 마치 젖은 불꽃놀이처럼 아무리 불을 붙여도 타오르지 않던 것들이, '이 정도면 할 가치가 있는 걸까?' 혹은 '안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꺼져버렸던 의욕의 불길이 이제는 제대로 타오를 수 있게 되는 그런 화학반응일지도 모릅니다. 그 '의욕'이라는 것이 특정한 무언가에 대해 집중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자신이 직면하는 일에 대해 긍정적인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되기도 해요. '안 해도 될까'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하고 싶다'라고 느끼게 되는 그런 자극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는 일으킬 수 없었던 불이 붙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런 관계를 지금까지 몰랐기 때문에 아깝다거나, 이만큼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 안에서 납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해요. 정체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상당한 진전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크게 앞으로 나아갈 거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승리를 가져오는 것, 정말로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누군가의 마음을 얻거나, 무언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했다는 느낌, 무언가 노력을 했거나 스스로 그것을 하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느낌이에요. 다른 자신이 되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자, 해보자!'라는 감각이나, '이제부터 나는 할 거야'라는 감각이 생기는 것처럼요. 그것을 가짐으로써, 그렇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어요. 꽤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휴식한다는 것은 몸을 쉬는 것보다는 머리를 쉬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신경 쓰였던 것들이 마침내 머리에서 떠나가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거나, 더 이상 그것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낄 수 있는 계기가 있을지도 몰라요.
이 타이밍이 어떤 형태로 보일지 보면, 조금 사람과 거리를 두거나 혼자가 되어보거나, 시끄러운 곳에서 떨어져 보거나, 한 발짝 물러서는 것도 의미가 있어요. 멀어져 보거나 조용해져 보면서 그 진행할 기회나 나아갈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상당한 폭발력과 한 번에 움직이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나의 철학이나 단기적인 이익,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기보다는 깊은 성찰을 통해 왜 이것을 원하는지, 이런 삶을 살고 싶어서 이것을 원하는지와 같은 철학이나 삶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힘이 생겨나게 된다고 합니다. 단순히 필요해서가 아니라,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법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철학을 발견하고 훨씬 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발견하게 되는 철학에 대해 보면, 고통이나 마음의 상처, 상처받은 경험에서 비롯된 철학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나 그때 상처받은 자신의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한 철학이 생겨나고,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철학이 자신 안에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단순히 살아가기만 하거나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그때 상처받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철학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절대로 굽히고 싶지 않은 것이나, 자신이 흔들릴 때 자신을 바르게 유지해 주는 진정한 것, 그것을 혼자서 조금 생각해 보면, 그 이후에 나타나는 큰 기회를 정말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안도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에 이루어진 성취가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보면, 새로운 도전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매우 충실하고 바쁘며,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새로운 발견이 자신 안에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긍정적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같습니다. 스위치를 켜는 것, 스위치를 켜고, 가면을 쓰는 것에 대해 말했지만, 이제 스위치가 켜지고 잠들어 있던 것이 깨어나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특히 돈이나 일에 관한 학습이나 무언가를 배우고 그 첫걸음을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누군가를 따라가거나 자신에게 아직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환상이나 현실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에 잠기게 되고, 현실을 본래의 크기보다 머릿속에서 점점 부풀려버리지만 이러한 학습이 자신 안에 있어서, 그 환상이나 착각, 불안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거나, 그 불안이 실제 현실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머릿속에서 부풀려버린 것은 아닌지를 알게 해주는 학습이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학습을 시작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에 대해 보면, 아직 시작할 것이 있거나, 시작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해보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보다 '이것은 어떻게 될까' 혹은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걱정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학습을 시작하면, 그것이 현실이 되고 실제로 시작하게 되며,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시작해 보고 알게 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 안에서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실제로 시작하기 위한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는 것을 이 학습을 통해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 안에서 커져만 가는 불안이나 고민, 그리고 그 환상이 실제로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보면, 누군가와 이야기해 보는 것의 중요성이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혼자 생각할 때 '이럴지도', '저럴지도', '안 될지도'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자신 안에서 결론이 나버리고 다른 시각이 들어오지 않게 되죠. 또는 그런 상태가 되면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일이 있어도 '그렇지 않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너무 많이 생각한다고 해도 '걱정되니까', '불안하니까'라며 그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되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서, 그래서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집중도를 희석시키거나 자신 안에 가득 찬 것을 조금씩 밖으로 흘려보내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생각이 많이 나올 때는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어 지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가 되는 것이 공감에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누군가에게 공감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도 있죠. 하지만 단순히 '이해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고민이나 불안이 사실은 희망이나 꿈의 이면일 수도 있어요. 고민하는 만큼 실제로는 믿고 있는 꿈이나 되고 싶은 모습이 자신 안에 매우 강하게 있고, 그 꿈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하지만 '꿈을 꿔도 좋다'라고 생각함으로써, 그 모호함이나 고민이 가벼워질 수 있는 깨달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꿈이나 되고 싶은 모습은, 그렇게 되지 않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래는 그것을 꿈꾸는 것 자체로 인해 느껴지는 설렘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긍정적인 면을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자신 안에서 확인할 수 있을 때, 그 꿈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이나 꿈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앞으로 꿈을 꾸어 나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어요.
그런 인식에서부터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보면, 모호하고 혼돈스러운 상태에서 형태가 생겨나고, 꿈을 구체화하고 단단히 다져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모호했던 것들이 구체적인 형태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단순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이 현실화되어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화된 것들을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다시 흘러가버리거나 형태가 무너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미 형태 자체를 단단히 다져버리는 것이죠. 정말로 단단히 결정되어 가는 느낌이에요. 그만큼 책임감도 따르고,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도 생기며, 뒤로 돌아갈 수 없는 형태로 단단히 결정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수용하는 것, 조용히 수용하는 것,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는 것,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 이런 메시지가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을 용서하는 것,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항상 무언가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상태는, 현재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자신의 의식이 가버려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현재가 아닌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거나 그것에 엄격해지려는 것은 현재를 부정하는 것일까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어딘가에 멈추려는 자신의 마음이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느낌일까요? 하지만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해 멈춰버린 시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뒤에 남겨진, 수용되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시간과 함께 나아가게 해주는 것, 자신의 시간을 현재에 맞춰가는 것, 그런 메시지가 오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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