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jlUC5_jtxU?si=CRlaq6UOAuUwRB8w
※아래 내용은 위 일본 타로 유튜버의 물병자리 2024년 8월 운세 제너럴리딩 영상을 한국어로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느끼셨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마음 깊은 곳에서는 꽤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이렇게 힘들었다거나, 이렇게 많이 고민하고 머릿속에서 생각이 많아진 건 오랜만이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잠재의식 속에서는 그 고통과 힘든 것들이 많이 쌓여서 이제 표면으로 떠오르려는 단계에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힘들었던 시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거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런 느낌을 가지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어려움이 끝났다고 생각해요. 어려움이 끝나고 서서히 빛이 들어오고 있어요. 이제 한 과정이 끝났고, 정말 열심히 했고, 이 과정을 이제 마쳤다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해요. 무엇인가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그런 형태로 명확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과정이 끝났다는 것을 이해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이미 끝나거나 완료된 것에 대해 스스로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라거나 '지금이 아닌 것 같아' 라거나 '좀 더 빨리 끝내고 싶었는데' 라거나 '왜 그때 그랬을까'라는 생각들이 좋은 의미로 소화되어, 이제는 완전히 소화된 느낌으로 '아, 이걸로 완전하구나', '이걸로 완벽해졌구나'라는 형태로 졸업할 수 있는 그런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려움의 끝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어떤 계기로 그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는지, 더 이상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보면, 자신의 마음속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거나, 여기서 내가 사실 상처받았구나,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어려움이 끝난다고 말하고 있어요. 마음의 상처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그런 상처는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거나, 어떤 것이 상처인지 모른다거나, 분명히 힘든 경험을 했지만 그것이 상처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로 느낄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상처는 있는 거예요. 그리고 아무리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처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을 스스로 '아, 상처받았구나'라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전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이 나타나서 모른 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상처받는구나' 라거나 '이런 일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라거나, 그리고 그 상처가 있음으로 인해 내 마음속에 답답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려움이 끝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처나 트라우마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없었던 일로 해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스스로 없다고 생각하려 해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 그 존재를 깨달았을 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깨닫지 못하면 그 상처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을 스스로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처가 생기는 원인은 마음의 어느 부분이 그 상처가 생김으로 인해 스스로 변화하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상처를 알 수 있을지 보면, 정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 예를 들어 아무리 친한 사람이나 파트너,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자신 안에 있거나, 사실 이것을 말해도 절대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부분이 자신 안에 있고, 그 말할 수 없는 것 뒤에 상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서 그 뒤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말하지 않는 것, 숨겨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입 밖에 내면 아마도 잘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가 이런 곳에서, 저런 곳에서 생겼다고 언어화하려고 하면 언어가 가능한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이런 상황에서 나는 상처받는구나'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때, 직감으로 그것을 알 수 있을 때, 그 상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하는 것보다 느끼는 것, 말로 이해받으려고 하는 것보다, 혹은 스스로 언어화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그냥 나오는 감각을 그대로 두는 것이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부분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정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 예를 들어 아무리 친한 사람이나 파트너,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자신 안에 있거나, 사실 이것을 말해도 절대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부분이 자신 안에 있고, 그 말할 수 없는 것 뒤에 상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월드 카드가 나왔기 때문에 이제 곧 완결될 때, 막이 내릴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이 여기서 완결의 시기를 맞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웠던 시간을 끝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깨달았을 때,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착을 내려놓은 상태나 두려움이 없는 상태,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이죠. 예를 들어 두려워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무언가에 빠져버리거나, 과도하게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중독이 되거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무언가를 지나치게 하거나, 그 사람에게 너무 의존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적절한 상태로 돌아가고, 술을 마시는 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를 지나치게 하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적절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두려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우 균형 잡힌 자신이 되거나, 균형이 잘 맞아서 현재 상황을 중립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면, 나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거나, 이런 식으로 나쁜 방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중립적이기 때문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지, 나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싶어서 이렇게 하자거나, 나쁜 일을 피하고 싶어서 저렇게 하자고 해도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적절한 위치에 서게 되면 결국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정해진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이 고통받지 않는 방향이거나 건강한 거리 두기를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케이션, 특히 자신과의 커뮤니케이션, 하나로 뭉쳐지지 않은 자신, 이중성이 있는 자신,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면을 탐구해 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없다고 단언하지 말고, 무엇이 상처인지, 또 다른 자신으로서 자신에게 생각해 보거나 분석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시각이 이 어려움의 끝이나 완결, 성취를 향한 힌트를 줄 것 같습니다.
8월에는 할 일이 많아지거나 스스로 할 일을 많이 만들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자신에게 시켜보고 싶은 그런 감각이 생길 것 같아요. 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거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상상력의 세계,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 그 상상 속에서 그 세계를 믿어보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해보는 과정에서 '아, 이제 한계인가'라고 느낄 정도로 하고 싶은 일들 속에서 신비한 메시지나 감각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를 하고 싶어 지거나, 몸은 하나지만 모든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무엇을 알려주려는 것인지 보면, 잠들어 있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나, 쌓아두고 있는 것들,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자신에게 알리기 위해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당연하게 여겨져서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이나 창고에 넣어둔 것 같은 것들, 자신이 계속 가지고 있던 것들의 존재를 깨닫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거기서 새로운 일이나 돈이 되는 일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잠들게 한 것들을 깨닫고 그것을 사용해 보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보면, 아마도 어려움을 끝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불안한 마음이나, 자신 안에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부분, 신경질적으로 되는 부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들을 끝내주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에게 알게 해주는 그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완전히 믿지 못하는 부분, 창고에 넣어둔 것들이나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그런 것은 없을 거야', '나는 아무것도 없어', '쓸모없을 거야', '의미 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믿어보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그런 세계도 있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자신이 창고에 넣어둔 것을 사용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세계,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정말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보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계를 상상해 보고, 그 상상이 정말로 있을 것 같다고 느끼게 해주는 계기나 사건을 믿어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보면,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 카리스마,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들,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믿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마음가짐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사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것,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변할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혹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자신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생각을 상상해 봐도 좋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므로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이 믿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 때, 거기서 에너지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변화는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집중할수록,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커지게 됩니다. 자신 안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커지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나 비판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 대한 확신이나, 주변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주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감각이 많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8월에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찾아보라는 메시지가 온 것 같습니다.
매우 전진하고, 성취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9월이 되면 그 떠오름이 힘을 받아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느낌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나아가는 주변 환경이 꽤 극복해야 할 환경이거나,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자신이 불필요한 곳에서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식을 가지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취와 전진이 가능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면, 일상생활에서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가능성이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게 되고, 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해도 똑같다거나, 어차피 해도 변하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해서 별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이나, 애초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던 부분에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거나, 이것을 하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생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마음은 어딘가에 있었지만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런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할 곳이 없어서 그런 마음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뒤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그런 마음이 드디어 앞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들이나 특별한 것보다는 익숙한 것들에 대한 시각이나,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자신의 시각이 많이 변할 것 같습니다. 기한이 보인다거나 시간적 제약을 두는 것, 그것으로 의욕이 생기고 그동안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앞으로 나아갈 계기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이랬지만, 이제부터는 끝이 정해져 있으니 그동안만 하자거나, 그동안만이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행동이 따라오게 되면, 매일이 단순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 풍경을 보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거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시각이 변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 잘 보고 싶다거나, 단조로웠던 것들에 대해 '사실 이런 색이 있구나', '이런 것이 있구나'라고 이해하고 싶어지는 그런 변화인 것 같습니다.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주변의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분위기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은 아마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것 같지만, 그것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갔을 때, 전진할 수 있었을 때, 자신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보면, 자신이 어떻게든 할 수 있고, 그것을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신이 결정해야 하고, 결정함으로써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자신이 짊어짐으로써 제대로 형태가 잡히고, 애매했던 부분에서 길이 보이게 되는 것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앞에 서는 것, 그것이 가능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앞에 선다는 것은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것은 자신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이고,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 확고해졌다는 감각이나, 토대가 이미 마련되었다는 느낌, 주변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주의를 돌리려 하거나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흐름을 떨쳐내면, '이것을 떨쳐냈으니 괜찮다'는 자신감이나 기반이 자신 안에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 기반이 생김으로써 자신이 끌어들이는 좋은 변화에 대해 보면, 너무 넓히지 말고, 한계를 설정하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선택지 중에서 이것일까 저것일까, 아니면 이것일까를 찾기보다는 어느 정도 한계를 설정하고 구분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때가 있습니다. 그 한계는 자신이 할 수 없거나 능력이 없다는 한계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어서 혼란스러워지고 방향을 잃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한계인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에 대해 눈을 가리거나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거나, 너무 많이 보이는 것을 시야에서 차단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생각이 안정될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이럴지도 몰라, 저럴지도 몰라' 하던 것이 '여기만 보면 돼, 이 안에서 찾아보면 돼'라고 생각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 사람들과 충돌하는 것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좋다'고 할 수 없고, '이것이 좋아'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해도 그 좋아하는 마음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충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온 것 같습니다.
신과 함께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 자신의 모든 행동을 큰 존재의 의도에 봉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 즉 큰 존재는 자신을 초월한 곳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 큰 존재가 당신의 영혼을 이 세상에 보낸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하는군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기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 똑같은 복제본이 아닌 각각 다른 인간 영혼을 만들었는지, 왜 차이를 두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 차이를 대다수에 맞추어 모두 같아지도록 하는 것을 그 큰 존재가 바랐던 것인지, 아니면 그 차이를 제대로 살아가는 것을 큰 존재가 바랐던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는 것은 삶을 사는 하나의 방법일 뿐, 그것이 신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거나, 그것을 이루게 해 주거나 혹은 이루지 못하는 경험을 통해 느끼는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끼는 것을 큰 존재가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자신의 감정의 움직임을 일으키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느끼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이 큰 존재가 자신을 이곳에 보낸 목적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 이 시기의 조언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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